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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 (The Gospel: God’s Glory In The Face Of Christ)

Message

2015년 신년 메시지

복음: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
(The Gospel: God’s Glory In The Face Of Christ)

고린도 후서 4:1-18
요절 4: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복된 새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고”로 시작해서 같은 말로 끝납니다. 영어성경 KJV에는 “we faint not,” “우리가 기절하지 아니하고”로 되어있습니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많은 희생을 했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열매가 없거나 난관에 부딫칠 때 낙심하는 시험에 들기 쉽습니다. 사도 바울은 왜 우리가 낙심하지 않는가 분명한 이유를 말합니다. 이는 우리가 복음의 빛, 곧 하나님의 영광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어떻게 승리에 찬 열매있는 삶을 살았는가 증거합니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I.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 (1-6)

1절을 보십시요.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여기서 "이 직분"은 신약, 곧 복음의 사역을 가리킵니다. 율법에 기초한 구약은 정죄와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복음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의와 생명을 가져왔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로 이 영광스러운 직분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직분을 감당해야 합니까? 2절을 보십시오.. "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고린도에는 말씀을 혼잡하게 함으로 사람들을 속이는 거짓 교사들이 있었습니다. 복음사역자들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말씀을 희석시키는 시험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신실한 하나님의 종들은 진리를 분명히 나타냅니다. 그들은 도덕적으로 순결하며 사람들의 영혼을 보살핌으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합니다.

3-4절을 보십시요.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복음이 전파될 때, 사단이 불신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복음을 받지 못하게 합니다. 사단이 그들로 하여금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입니다. 이는 복음에 관한 주목할 만한 설명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 곧 본성과 실체이십니다.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를 볼 때, 사단의 세력에서 자유함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단은 불신자들이 부나 명예나 권력과 같은 세상 영광 만을 보도록 미혹하는 것입니다. 세상적 가치관으로 볼 때 복음은 어리석고 약한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요 지혜입니다. (고전 1:24) 우리는 사람들을 어두움의 세력에서 해방하여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영광스러운 복음의 사역자들이기 때문에 낙심하지 않습니다.

6절을 읽겠습니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이 요절에서 세 가지 점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복음을 통해서 사람들을 재창조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 세상은 혼돈과 어두움 속에 있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말씀하셨습니다. (창 1:3) 빛은 창조 세계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생명이 살게 하였습니다. (요 1:4) 타락 후에 사람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 졌습니다. (롬 1:21)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그의 독생자를 세상의 빛으로 보내셨습니다. (요 8:12) 하나님은 그의 아들의 복음으로 사람들을 재창조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저의 삶 속에 오시기 전, 저는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알지 못한 채 어두움 속에 있었습니다. 저는 병들었고 죄로 인해 고통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두려움의 노예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크신 긍휼로 성령님을 통해 저의 마음에 복음의 빛을 비추사 저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저의 무거운 죄짐이 벗겨지고 저의 영혼에 하늘나라의 기쁨이 넘쳤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저를 치유하셔서 제가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게 하셨습니다. (말 4:2) 저는 새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고후 5:17) 여러분도 저와 같이 간증하실 것입니다.

둘째, 복음의 빛은 우리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합니다.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하나님께서 그의 영광을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내셨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에 복음의 빛을 비추사 우리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입니까? 사도 요한은 이렇게 증거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4)  요한은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당신은 복음서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서 무엇을 봅니까? 니고데모와 사마리아 여인에게 보이셨던 그의 사랑과 진리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레위와 다른 제자들, 특히 베드로에게 보여주신 그의 소망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문둥병자, 소경, 그리고 귀신들린 자에게 보이신 그의 긍휼과 자비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유대 종교지도자들을 대할 때 보이신 그의 의와 지혜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성부께 대한 그의 경외와 순복과 순종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무엇보다도 십자가 위에서 보여주신 그의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이 되셨습니다.  그의 지고의 사랑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요!  병자들을 고치시고 죽은 자들을 살리시고 바다를 잠잠케 하신 그의 권능이 얼마나 크신지요. 그의 부활의 권능은 얼마나 위대한지요! 이들 그리스도의 성품의 아름다움과 그의 권능의 위대하심이 하나님의 영광인 것입니다. 

셋째, 복음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성 어거스틴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오 주님, 당신은 우리를 당신을 위해 창조하셨고 우리의 마음은 당신 안에서 안식하기 까지 쉼이 없나이다." 하나님이 없이 사는 사람들은 고아들과 같습니다.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는 그의 자녀들이 어두움 속에서 멸망해 가는 것을 보시며 심히 마음 아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해방하여 당신의 품으로 데려가시기 위해서 가장 어려운 일을 하셨습니다.  그의 아들을 성육신하게 하사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죽게하시고 다시 살아나게 하심으로 그의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성부와 성자께서 성령을 보내사 우리와 함께 하게 하심으로 우리가 영원히 하나님의 임재를 기뻐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 복음을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벧전 3:18상) 복음은 우리에게 죄사함, 의롭다 하심, 화평, 치유, 은사들, 자유함, 영화와 영생 등 모든 축복들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 모든 축복들과 함께 복음의 최상의 축복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당신 사이에 있던 장벽을 허무시고 우리를 당신에게 돌아오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복음의 최상의 선물이신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교리 문답 첫번째 질문은 "사람의 첫째되며 가장 높은 목적은 무엇입니까?" 입니다. 대답은 "사람의 첫째되며 가장 높은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함과 영원토록 하나님을 온전히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입니다. 이는 복음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가 말해 줍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삶의 중심에 모심으로써 우리가 최상의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때, 우리는 최상의 기쁨과 만족을 느낍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 가장 만족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랑과 헌신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아름다움 보다도 더 우리에게 기쁨과 만족을 주는 것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언제 낙심하게 됩니까?  우리가 언제 기쁨과 감사함을 잃게 됩니까? 우리가 언제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하는 소원을 잃게 됩니까?  우리가 우리 마음의 왕좌에 하나님을 모시지 않고 있을 때입니다. 우리가 자기 중심적이 되고 자기의 영광을 구할 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을 때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의 주되심, 곧 주권을 영접해야 합니다. 5절은 말씀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된 것을 전파함이라." "주 예수" 또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는 주이시다"는 사도들과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롬 10:9, 고전 12:3, 빌 2:11) 골로새서 1:16상은 말씀합니다; “만물이 다 그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우리는 우연히 이 세상에 있게 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창조주시며, 우리는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 (계 22:13) 예수님은 창조주시요 역사의 완성자이십니다. 모든 피조 세계와 역사는 그를 영화롭게 하기위하여 운행하고 있습니다.  초대 기독인들은 그리스도를 우주의 통치자요  자신들의 삶의 주관자로 고백하였습니다. 그들은 이교의 우상숭배와 로마의 황제 숭배에 맞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들의 신앙을 증거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보다도 구원자요, 치유자요, 친구로서 여깁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요, 치유자요, 친구이신 만큼 우리의 주이십니다. 만일 주님께서 쓰시겠다 하시면 우리의 생명이라도 내어드릴 수 있습니까?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기뻐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예수는 주님이시다"는 신앙고백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 성부께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요 17:4)  예수께서는 성부께서 하라고 하신 사명을 이루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복음을 전파하시고 제자들을 양성하시고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 13:34)  주님은 또한 우리에게 지상 명령을 주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 (마 28:18-19상)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의 열매를 맺고 주님의 세계 선교 명령을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 안에 복음의 빛을 비추사 우리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시며 우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히 기뻐하게 하신 하나님께 찬송을 드립니다.

II.  우리의 연약함과 고난을 통해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영광 (7-12)

7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의 육신은 질그릇과 같이 연약합니다. 하나님은 겸비하고 약한 사람들을 통해서 그의 영광스러운 복음을 세상에 전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심히 큰 복음의 능력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하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연약함으로 인해서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주님의 지상 명령을 수행할 때 많은 난관과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는 8-9절에서 증언합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바울은 투옥 당하고 채찍질 당하고 여러번 죽음에 이를 뻔 하였습니다. 강도와 핍박자들과 자연의 재난의 위험을 당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온 교회들을 위한 염려 때문에 그의 심령은 항상 억눌려 있었습니다. (고전 11:23-29) 세상의 눈으로 볼 때, 바울은 어리석고 가련하고 약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그에게 모든 길이 막혔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구하시고 길을 내셨습니다. 한번은 그가 돌로 침을 당한 후, 도시 밖에 버려졌습니다. 그의 제자들이 그의 장례를 준비하고 있을 때, 그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행 14:19-20)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심으로 그는 쓰러져도 항상 오뚜기와 같이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가 체험한 비밀을 10-11절에서 증거합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바울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졌습니다. 여기서 "예수의 죽음"은 하나님의 세계 구원 계획을 이루기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부인과 고난을 가리킵니다. 바을은 그리스도의 자기 부인과 고난을 통해서 그의 생명과 영광이 나타난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함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그의 영광을 알고자 했습니다.  그는 빌립보서 3장 10-11절에서 말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바울 사도가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였을 때, 주님께서 그의 생명, 곧 그의 부활의 권능을 그에게 나타내셨습니다. 바울 사도에게 있었던 거듭된 구원과 새 힘과 용기의 회복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 곧 그의 영광이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 28:20) 세계에 흩어진 저희 UBF 선교사, 리더들과 함께 하시며 그의 생명과 영광을 나타내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많은 동역자들이 전쟁과 추방과 질병과 재정적 어려움 등 고난을 겪었습니다. 주님께서 모든 환난 가운데서 그들을 도우셨고 복음의 진보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혼두라스의 강다윗 선교사는 강도들의 총에 머리를 맞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를 보호하심으로 총탄들이 그의 머리뼈를 관통치 않고 멈추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중 많은 분들이 여러분의 삶과 사역에 나타난 주님의 생명과 영광을 간증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약속과 그의 심히 크신 부활의 능력 때문에 담대히 주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의 질그릇을 돌보고 장식하기 위하여 일생을 보냅니다. 질그릇의 영광이 얼마나 허무한가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가장 고귀하고 영원한 보배, 곧 예수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삶을 드립니다. 주님께서 사도 바울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행 9:16)  바울 사도의 고난은 그로  하여금 당신과 연합하게 하여 그에게 당신의 영광을 보여주기 위해서 주님께서 계획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은 개인적 편안이나 유익함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와의 사랑의 연합에서 자라는 것이며, 그의 삶의 본을 따름으로 그의 영광을 아는 것입니다.

저는 영화 "그리스도의 수난" (2004) 에서 예수님 역을 했던 배우 짐 카비젤 (Jim Caviezel)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 영화는 세계적인 흥행기록을 세우고 세기의 명화로 남게 되었습니다. 근래 저는 왜 짐의 연기가 사람들을 감동케 했는가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감독 멜 깁슨으로 부터 예수님 역을 제안 받았을 때, 그는 자신의 이름 첫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첫자들 (J.C.)과 같고 그의 나이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나이 33세라는 것울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를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영접하고 사람들이 영화 속에서 자신을 통해 예수님을 볼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촬영 중에 그에게 몇가지 고난이 닥쳐왔습니다. 그가 십자가를 지고 가는 장면에서 그의 왼쪽 어깨가 탈골되었습니다. 그는 "주님, 지금 영화를 만드는 중이고 저는 배우에 불과합니다. 저를 보호해 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라고 항의하였습니다. 그러나 고난은 계속되었습니다. 채찍질 당하는 장면에서 한 채찍이 그의 등에 댄 쇠 판을 벗어나 맨 살에 맞음으로 그는 등이 30센티 이상 찢기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히는 장면의 촬영 중에 그는 폐렴에 걸렸고 저체온증으로 거의 생명을 잃을 뻔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내가 이 영화를 만들다가 죽으면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지 않겠는가?" 생각하면서 모든 고통을 견디며 촬영을 계속하였습니다. 그가 이렇게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였을 때, 사람들은 실로 그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었습니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이 그 촬영 경험을 통해서 변화되었다고 간증하였습니다. 주님은 그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드린 기도를 받으시고 그가 고난을 통해 당신의 고난에 연합하게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주님께서 그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갖도록 축복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12절에서 말씀합니다.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바울 사도가 예수님을 따름으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 주님께서 그들의 안에도 자신의 생명을 나타내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생명의 역사에는 반드시 희생이 따른다는 것을 배웁니다. 우리는 또한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 배웁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기 위해서 고난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함으로써 그리스도를 알고자 하는 깊은 소원울 갖게하시고, 이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II.  잠시의 고난과 비교할 수 없는 우리의 영원한 영광 (13-18)

13-15절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어떻게 어려운 시대를 섬겼는가 증거합니다. "기록된 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노라.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13-14) 바울은 시편 116장 10절을 인용합니다. 시인은 하나님 안에서 산 소망이 있었기 때문에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께 대한 그의 신앙을 담대히 말할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도들과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부활 신앙으로 담대히 주님의 이름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들의 기쁨의 메시지는 죽음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망을 정복하셨고 우리도 그의 영광의 몸으로 다시 살리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 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세상은 어두워져 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담대히 복음에 대하여 말할 때,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에 그의 생명의 빛을 비추어 주십니다.

16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새로와 지는 것보다 더 기쁜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사도 바울처럼 예수님을 따를 때 우리의 내면이 날로 새로워지게 됩니다. 바울 사도는 또한 3장 18절에서 말씀합니다. "우리가 다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볼 때, 그의 아룸다운 성품에 비추어 우리의 죄를 깨닫게 됩니다. 이 깨달음이 우리를 회개로 인도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더욱 더 알게될 때, 더욱 더 그의 영광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여기서 "본다"는 본래 "깊이 생각한다" 또는 "묵상한다" (contemplate, NIV)는 뜻입니다. 이는 우리가 어떻게 성경을 공부해야 하는가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알고자 기도하며 말씀을 공부하고, 말씀이 나타내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묵상을 위해서는 마음과 시간을 드려야만 합니다. 우리는 말씀 소감쓰기를 해오면서 쓰기를 통한 말씀 묵상이 이를 성취하는 매우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내면의 변화를 위한 말씀 묵상에 마음과 시간을 드림이 없이는 어느 누구도 예수님의 제자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매년 우리의 비젼과 열정에서 새로와져야 합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항상 열정과 비젼에 차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 자에게 새해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새로운 비젼과 열정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저에게는 한 비젼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UBF가 우리 세대에 세계의 주요 도시와 캠퍼스들에 나아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저희가 우리 세대에, 우리의 생애 동안, 우리가 사역하는 나라로 부터 시작하여 세계의 모든 주요 도시와 캠퍼스에 나아가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더우기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으로" 우리는 낙심하지 아니합니다 (17). 사도는 우리의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과 우리의 "경하고 일시적인 환난"을 비교합니다. 우리의 현재의 환난은 영원하고 지극히 큰 영광과 바교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롬 8:18)  그러므로 "우리의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18)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일시적이요, 다 사라지고 맙니다. 성경에 약속한 하나님의 나라 만이 영원히 지속할 실재 세계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미래에 비하면 우리의 현세의 삶은 순식간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드릴 때 하나님께서 그것을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영광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계 22:12)  하나님의 나라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영광 가운데 하늘의 별들과 같이 빛날 것입니다. (단 12:3)  거기서 우리는 모든 성도들과 하늘과 땅의 모든 피조물들과 함께 웅장한 우주적 찬송을 합창할 것입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계 5:13)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영존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영원히 그를 영화롭게 하며 기뻐할 곳이기 때문에 영원한 낙원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를 영원히 기뻐하도록 우리를 회복하시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그의 보혈을 흘리신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의 기쁨과 만족과 성화의 근원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며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세계 캠퍼스의 젊은 영혼들을 우리들에게 맡기셨습니다. 캠퍼스 양들에게 대학 시절은 인생의 미래를 준비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입니다.  이들은 미래의 지도자들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사회와 국가의 미래이며 교회의 미래입니다. 저희가 이들을 하나님의 마음과 비젼을 갖고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기꺼이 그라스도의 고난에 동참함으로써 그의 세계선교 지상명령에 순종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끝으로, 낙심하지 맙시다.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능력을 믿고 그 능력으로 강하고 담대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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